'난닝구'를 아시나요? 흔히, 나이 많은 아저씨나 할어버지들이 많이 입는 하얀색의 남성용 상반신 속옷을 '난닝구'라고 합니다. 순화해서 '런닝'이라고 말하는 그것입니다. '난닝구',, 듣기만 해도 일본어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난닝구'는 진짜 일본어가 맞는지, 어떤 이유로 이런 말이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여러분의 비밀스러운 일본어 선생님 '비밀쌤'과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
'난닝구'의 어원
추측하신대로, '난닝구'는 일본어에서 온 표현입니다만, 순수한(?) 일본어가 아닌, 추가 왜곡이 발생되어 한국에 정착된 말입니다. 일본어의 ランニング '란닝구'가 한국어의 'ㄹ두음법칙'이 적용되어 '난닝구'가 된 것입니다. 한국어에서 ㄹ로 시작되는 말은 'ㄴ'으로 바뀌는 규칙이 'ㄹ두음법칙'입니다. 楽園 '락원'이 '낙원'으로 변환되는 것과 동일한 형태이지요.
일본어의 ランニング '란닝구'는 영어의 'running'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말이며, 말 그대로 running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ランニングシャツ '란닝구 샤츠'의 줄임말로도 쓰입니다. 사실 이 'running shirt'라는 말도 미국/영국에서 쓰는 말이 아닌,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식 영어입니다 (a.k.a Japlish). 달리기를 할 때 입기 좋은 셔츠라는 의미입니다. 미국에서는 이 '난닝구'를 under shirt라고 합니다.
왜 란닝'구'일까?
아,, running을 일본식으로 읽어서 '란닝구'라고 했구나,, 라고 이해할 수 있는데,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왜 '란닝'이 아니고 뒤에 '구'까지 붙는 것인가? 일본어에서 받침으로 쓰는 ん을 활용하면 '란닝'이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굳이 불필요한 '구'까지 붙여서 얘기를 하는 걸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開音節(かいおんせつ) '개음절'과 閉音節(へいおんせつ) '폐음절'애 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개음절과 폐음절
간단하게 설명하면, 모음으로 끝나는 음절이 '개음절'이고, 자음으로 끝나는 음절은 '폐음절'입니다. '음절'이란, 하나 이상의 음소(소리의 최소 단위)가 결합하여, 실제로 발음 가능한 최소 단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 단어 '학교'는 '학'과 '교'라는 두 개의 음절로 이루어져 있으며, '학'은 'ㅎ', 'ㅏ', 'ㄱ'이라는 음소가 서로 결합되어 만들어진 음절입니다. 일본어에서의 음절은 보통 かな '카나' 한 글자가 각각의 음절이라고 생각시면 됩니다. 물론 몇 가지 예외 사례가 있으나, 자칫 설명이 길어질 수 있므로 음절이 대한 상세한 얘기는 다른 포스팅으로 정리하겠습니다.
복잡한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일본어의 촉음 っ와 받침자 ん을 제외하면, 모든 음절이 모음으로 끝나는 '개음절'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어의 か(카)는 자음 'k' (c) + 모음 'a' (v)로 이루어진 '개음절'이고, 오십음도에 나오는 대부분의 글자도 모두 이 '개음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자음 : consonant (c)
- 모음 : vowel (v)
외국어 발음 시의 모음 삽입현상
다시 '난닝구'로 돌아와서, 왜 '란닝'이 아니고 '란닝구'가 되었는지 설명드리겠습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일본어의 대부분의 음절은 모음으로 끝나는 '개음절'입니다. 일본어에서는 외국어를 일본어化 시켜서 발음할 때, 영어 단어가 '자음'으로 끝나는 '폐음절'이 생기는 경우, 자음의 뒤에 모음을 붙여 '개음절'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을 '모음 삽입현상'이라고 합니다.
군대에서 M-16 소총을 '엠16'이라고 하지 않고, '에무16'이라고 했던 기억이 나실 겁니다.'em' 처럼 자음으로 끝나는 폐음절에 '모음 u'를 추가하여 'emu'가 된 것입니다. 이런 일본어에서의 외국어 발음 시의 '모음 삽입한상'은 경우에 따라 'o'나 'i'가 붙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모음 u 우'를 붙이게 됩니다.
- start (시작) スタート(자음 t + 모음 o 가 삽입된 형태)
- speech (연설하다) スピーチ (자음 ch + 모음 i 가 삽입된 형태)
- club (클럽) クラブ (자음 b + 모음 u 가 삽입된 형태)
'란닝' + '구'
'란닝구'의 경우는 영어로 'run''ning'의 2음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어 발음기호로 ŋ (ng)에 해당하는 자음이 올 경우, 'g'에 해당하는 자음은 폐음절이 되어 발음을 할 수가 없어, 모음 'u'가 삽입되어 'グ'가 따라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영어 발음 ŋ (ng)에 해당하는 말이 나오면 보통 ‘ン(ん) + グ’의 형태로 발음하게 됩니다.
비슷한 예로,
- morning (아침) → モーニング (모-닝구)
- song (노래) → ソング (송구)
- long (긴) → ロング (롱구)
- running (달리기) → ランニング (란닝구)
어렵게 돌아왔지만, 이것이 '난닝구' 출생의 비밀입니다.
요즘사람은 모르는 '란닝구'
'난닝구'는 일본에서 온 말이지만, 여러분들이 일본에서 가서 '란닝구'라고 해도 일본사람들이 이해를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란닝구'의 말 뜻 그대로 '런닝' '달리기'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위 일본 아저씨들은 아직도 한국의 '난닝구'에 대해서 '란닝구' 혹은 '란닝구 샤츠'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이 속옷을 부를 때 '란닝구' 대신 タンクポップ '탕꾸톱뿌' (탱크탑) 라는 말을 쓰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탱크탑'이라고 하면 여자들이 입는 다소 공격적인(?) 노출 의상으로 생각하지만, 일본에서는 이 '탱크탑'이란 말이 한국에서의 '난닝구'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일본 유니클로에서 タンクポップ '탕꾸톱뿌'로 검색하면 우리가 아는 '난닝구'가 검색이 되는 걸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난닝구'가 필요하시면 '탕꾸톱뿌'라고 말해보세요.
마치며
오늘은 한국에서 구수하게 사용되는 '난닝구'에 대한 출생의 비밀(?)과 이를 알아보는 과정에서의 개음절과 폐음절의 개념, 그리고 외국어 표현 시의 모음삽입 현상에 대해서 간략히 알아보았습니다. 아울러, 일본에서도 한 때는 두루 쓰던 말이었던 이 '란닝구'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어 死語가 되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더 재밌고 유익한 주제로 돌아오겠습니다.
from 비밀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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